비가 그친 뒤의 산은
초록에 초록을 더해 폐부까지
봄이 스며드는 느낌을 줍니다.
2달 전 작목한 매실나무에서는 가지마다 새싹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.
보고,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일상의 기능이지만
관계안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겐
뭔가를 말하게 , 듣게 하는가 봅니다.
하!! 예쁘다,
아, 기쁘다,
아 행복하다
아 살만하다.......
무엇을 통해서
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?
그것은 눈(眼)을 통해서 보고
마음에 비추어 표현하지요.
오늘 하루 잠자리에 들기까지
잠심안에서
내마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
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.
<보는 것>
....
성서는 또 눈을 인간의 외면으로 여겨
인간은 눈을 보는 데 비해
하느님은 마음을 인간의 범접치 못할 자유로운 내밀을,
인간의 본성을 뚫어 보신다고 하였다.
이처럼
보는 눈과 내다보는 눈은
인간과 세계 사이,
안과 밖 사이의 신비로운 중심으로서,
거두어 들이고 내주며 나타내고 감춘다.
본 다는 것이 듣는 다는 것과 아울러 어떻게 종교용어상 묘한 대비를 이루면서도
하나로 합쳐져 하느님 및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표상으로 쓰이고 있는가는 이 짧은 글에서 다룰 수가 없다.
여기서는 일상의 보는 행위로 되돌아가자.
이 행위 자체도 이미 인간이 하나의 전체로서 어떠하며 어떠하여야 하는가를 말해주기 때문이다.
곧 인간은 열려있고,
두루 살피고, 멀리 있어 좌우할 수 없는 것에도 마음을 둘 줄 알며,
자기 자신을 내보이고,
내심을 드러내고,
남이 나를 있는 그대로 알기를
용납할 용기와 순진을 갖춘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.
이처럼
세상을 바라보고 자기의 실존을 보는 사람,
즉 세상을 감연히 있는 그대로 보면서
욕심과 허상으로 그 참모습을 뒤덮지 않는자
실상과 외양을 갈라 이중이 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내주는 자는
정신적인 눈이 건전한,
단순한 눈길을 가진 인간이다.
올바른<세계觀>을 일상의 눈길에 비유한 예수의 산상수훈은 그런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.
마태 6,22 - 눈은 마음의 등불이다. 그러므로 네 눈이 단순하면 네 온 몸도 밝을 것이다.
- 日 常 (神 學 斷 想) 장익역/ 분도소책1 -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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